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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dugout***)
2016.03.1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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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좇는 사나이”가 말했다.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세요.

 

 

 

여전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인 KBO리그 타격 7관왕을 달성, 조선의 4번타자로 이름을 날리며 일본무대에 진출했다. 이대호 이름 뒤에 붙은 무수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데 걸린 시간은 1년이면 충분했다. 팀을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옮긴 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반지를 2번이나 꼈으며 한국인 최초 일본시리즈 MVP도 차지했다. 한국과 일본야구를 제대로 씹어 먹었으니 뭐가 더 필요할까? 그러나 이 욕심쟁이는 아직 배가 고프다.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려고 나섰기 때문. 덩치만큼이나 꿈도 큰 사나이, 한국인 야수 최초 한·미·일 야구 챔피언이 되고 싶은 이대호가 <더그아웃 매거진>을 찾아왔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Park Ji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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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계약이 성사되고 취업비자 발급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른 이대호는 쏟아지는 스케줄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낮에는 광고 촬영, 저녁에는 몸을 만드는 이중생활의 연속이다. 체중도 10kg이나 감량했다. 시즌이 시작되면 1~2kg을 더 찌울 계획이다. 최근에는 스크린야구 <리얼야구존>의 광고를 위해 녹음도 했다. “내랑 한판 붙자. 너희도 리얼이지? 이렇게 사투리로 녹음했어요. 해보니까 재밌데요. 날이 추우니까 밖에서 하는 거보다 안에서 야구하면 또 신선한 맛이 있더라고요. 재밌게 했어요.”라며 깨알 홍보(?)를 하였다. 근황토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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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는 한 끗 차이

이대호의 계약이 성사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속이 없어도 운동선수는 운동을 해야 한다. 언제나 준비된 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애리조나에 위치한 롯데 자이언츠 스프링캠프였다. 공교롭게도 곧 그가 합류할 시애틀도 애리조나에서 훈련하고 있다. 덕분에 빠르게 팀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몇 년 전, <무릎팍도사>에 출연 한 번 했다고 그에게도 선견지명이 있었나보다. “아니에요. (웃음) 그것까지는 생각도 못했고 일단 미국 진출하려고 결정했기 때문에 혼자 운동하면 힘드니까 팀에 어울리면 몸도 더 잘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롯데 출신이니까 보기에도 좋고 감독, 코치님들도 가까운 분들이 많이 계셔서 괜찮겠다 싶었어요. 감사하게도 구단과 감독님께서 너무 흔쾌히 수락해주셨어요.”

 

 

롯데를 떠난 지 5년째. 당시 이대호의 백업요원이었던 몇몇 선수들은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선배 이대호는 그저 흐뭇하다. “실력이 정말 많이 향상했더라고요. 또 본인들이 팀의 주축이 되어있으니까 보기 좋더라고요. 벌써 4년 지났는데 (정)훈이나 (황)재균이가 이제 팀의 주전이 됐잖아요. 만나면 ‘이야~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라고 장난도 치는데 제가 참 좋아했던 후배들이 빨리빨리 올라오면 기분 좋고 뿌듯하죠.”

 

 

특히 정훈은 이대호를 자신의 멘토라고 밝히기도 했다. 두 사람은 실제로 자주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락 매일 해요. 룸메이트를 2~3년 해서 진짜 친하거든요. 좀 힘들면 연락오고 같이 운동하기 좋고 편했죠.” 그런 정훈이 이대호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타격 노하우를 물어보면 “공 보고 공 치라”고만 조언해준다는 것. 며느리도 몰라야하는 신당동 떡볶이 조리법도 아닌데 왜 안 알려주는 거냐고 묻자 이대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짜 그것밖에 할 말이 없어요. 다른 노하우 같은 건 없어요. 공 잘 보고 공 잘 치는 게 정답입니다. 저도 그러거든요.”

 

 

그렇게 옛 팀 동료들과의 훈련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달콤한 소식이 들려왔다. 이대호와 야구팬, 모두가 기다리던 메이저리그 계약 확정이었다. 올 겨울, 그 누구보다 애가 탔을 이대호다. “마음고생 아닌 마음고생을 했죠. 너무 늦어지면 비자라든지 그런 문제가 생기니까 저도 빨리 계약하고 운동하는 마음이랑 어디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게 다르거든요. 좋은 계약 이끌어내려고 에이전트가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저는 몸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하면서 최대한 의식 안 하려고 했어요.”

 

 

최근 몇 년 새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한국 선수들이 늘었다. 올해만 해도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와 김현수(볼티머어 오리올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이어 이대호가 네 번째다. 팬들은 그들의 성공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펼친다. 그의 미국진출에도 두 가지의 시선이 존재한다. 각각의 시선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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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는 분명 또 잘해낼 것이다 VS 이번에는 좀 힘들 것이다]

“잘할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제가 여태껏 보여준 모습을 기억하시는 거 같아요. 부상 없이 꾸준히 시합 뛴 걸 좋게 봐주시나 봐요. 반면, 제가 좋은 조건의 계약은 아니고 다른 여건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하니까 안타까워하시는 분들도 많죠.”

 

 

자신의 미래를 천천히, 하지만 힘주어 말하던 이대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을 이어갔다. “제가 하나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저 마이너리거로 계약하진 않거든요.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스플릿 계약이라는 말도 사실 안 해요. ‘우리 팀에는 기존 1루수와 지명타자가 있는데 1루수가 완손투수에게 약하다. 이대호는 왼손한테 강하니까 이런 식으로 계약했으면 좋겠다.’ 팀의 이런 상황을 듣고 계약을 하는 거지. 마이너리그 계약한 게 아니거든요. 시애틀에서 인터뷰할 때 ‘25인 로스터가 아니면 완전한 주전이 아니니까 마이너리그에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 건데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주전이 아니고 경쟁해야 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리면 마이너리그에서 뛰겠죠. 반대로 제가 시합을 뛴다면 또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거거든요. 근데 한국 언론에서 아무래도 번역을 해서 기사를 내는 거니까 단어 선택이 제가 생각하는 거와 다르게 나가더라고요. 어쨌든 제가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서 가는 거니까 제 모습을 보여주는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그의 계약이 메이저리그인지 마이너리그인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묵묵히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가 무사히 경쟁에서 살아남길 응원하는 것, 그뿐이다. 25등과 26등은 한 끗 차이. 물론 그 한 끗을 평생 넘기지 못해 좌절하는 이도 많지만 한 끗에 연연하여 꿈의 날개를 꺾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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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나라

사실 전 소속팀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이대호를 잡기 위해 계속 기다렸고, 3년 18억 엔(약 190억 원)이라는 대형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장된 자리, 보장된 연봉을 눈앞에 두고 대답 없는 꿈에 도전하는 이대호를 보는 팬들도 속병을 앓았다. “소프트뱅크에는 많이 고마워요. 정말 감사해야 할 부분이고, 한편으로는 든든했죠.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지만 누가 나를 믿고 기다려준다는 게 엄청난 힘이거든요. 근데 저는 다 내려놨어요.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간다고 했죠. 내려놓기는 쉽지 않지만 제가 어렸을 때부터 미국을 가고 싶었기 때문에 도전해보려고 한 거죠. 박찬호 선배님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모든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서 응원했잖아요. 그걸 보며 자라서 저에게도 늘 그게 꿈이었죠. 잘하든 못하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부딪혀보고 싶었어요.”

 

 

이제 곧 둘째가 태어나면 이대호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 그러기에 그의 꿈은 혼자만의 도전이 아니다. 그가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아내의 말 한마디였다. “아내가 힘이 많이 됐죠. 지금 임신 중인데 저보다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하잖아요. 제 뒷바라지하느라 늘 힘들 텐데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잘 따라줬고 든든하게 지켜주니까 제가 야구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와이프가 남으라고 했으면 남아있었을 것 같아요. 안정된 삶이잖아요. 또 나이도 있고. (웃음) 근데 아내가 먼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제 꿈을 위해서 도전해보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자고 이야기해줘서 더 편하게 결정할 수 있었어요.”

 

한편, 롯데에서 미국무대 진출을 꿈꾸고 있는 손아섭이나 황재균 등 후배 선수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손)아섭이나 재균이랑 대표팀에서 이야기했었는데 도전한다는 건 좋은 거죠. 아섭이나 재균이 둘 다 준비가 잘 안됐던 것 같아요. 메이저리그에 대해 알아볼 시간도 없었으니까. 충분히 준비하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지난해에 초반부터 준비했었다면 시즌 끝났을 때 가치를 더 많이 인정받았을 것 같아요. 작년에는 갑자기 이야기가 나와서 MLB도 준비가 안됐고 본인도 그렇기 때문에 상처, 사실 상처도 아니에요. (웃음) 올해 잘해서 진출하게 되면 추억으로 남을 거예요.”

 

 

이대호가 KBO리그를 제패하고 일본무대에 진출했을 때도 많은 이가 그의 성공여부에 물음표를 달았다. 그러나 그는 일본무대 진출 1년 만에 제 실력을 발휘하며 이름 뒤에 느낌표를 붙였다. 이번에는 NPB(일본프로야구)를 제패하고 미국무대를 노린다. 그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일본은 한국처럼 용병에게 확실히 대우하잖아요. 미국은 용병이 없어요. 그냥 또 다른 나라에서 온 선수라고 생각하죠. 용병 대우가 없기 때문에 제가 첫 프로 입단할 때 그 느낌이랑 비슷해요. 오히려 좋은 점이 있습니다. 색안경 끼고 보는 게 없으니 편하죠. 잘해주길 바라면 선수로서 부담이 되거든요. 사람이 내게 기대를 안 해주면 조금만 잘해도 기대에 부응하고 조금씩 기대가 쌓여가잖아요. (웃음) 그게 더 좋죠. 항상 기대를 많이 받아서 부담이 됐거든요. 부담을 내려놔서 더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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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좇는 사나이

모든 걸 내려놓고 힘든 길을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야구를 하면서 가슴 속에 품어온 꿈이니까. 도대체 야구가 뭐기에 이리도 고단한 삶(?)을 이어나가는 걸까. 알려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하…. 저한테 야구는 ‘숙제’같아요. 너무 어려워요. 솔직히 너무 어렵잖아요. 쉬운 걸 찾아가면 되는데 자꾸 어려운 숙제가 나오는 것 같아요. 시즌 끝나면 쉬고 싶고 숙제 안하고 싶은데 대표팀이라는 숙제가 생겼잖아요. 대표팀 끝나니 이제 미국이라는 숙제가 나왔어요. 이거 끝나면 또 내년에 숙제가 생길 것 같아요. (웃음)”

 

 

이대호는 ‘가장 큰 실패는 도전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한국, 일본에 이어 미국 야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법처럼 진짜 ‘말하는 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프로야구 선수가 됐을 때 이렇게 엄청난 도전을 하고 있으리라 예상했을까? “이만큼이 뭐야. 아예 생각도 안했죠. (웃음) 또 투수로 시작했는데 입단 첫해에 타자로 전향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국민들의 관심을 받을지 몰랐으니까. 연봉 1억이 꿈이었던 사람이에요. (웃음) 이제는 저 혼자만의 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한국에 있는 국민들도 같이 응원해주시고 같은 꿈이 됐으니까 꼭 같이 이루고 싶죠. 제가 잘하면 함께 즐거워해주실 분이 많으니까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미국무대 진출은 이뤘지만 또 다른 숙제가 남았다. 빅보이 이대호가 MLB에서도 통한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저한테 수비가 안 된다, 반응이 늦다고 이야기하시는데 제가 수비코치님들한테 수비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웃음) 범위가 좁은 건 인정하지만 공 잡고 던지는 건 자신 있어요. 자꾸 못한다, 못한다 하니까 내가 진짜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니까요. 분명히 MLB에도 저보다 더 못 움직이는 선수가 있을 텐데 아직 저를 잘 모르잖아요. 저 몸에 저렇게 뛸 수 있구나. 제가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인식을 바꾸는 게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35살의 이대호는 여전히 그라운드의 거인이지만 끝을 생각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꿈의 마지막 행선지는 ‘가족’이다. “저는 마흔까지 하고 싶은데 아내는 마흔 두 살까지 하고 쉬라고 말하더라고요. 정말 힘들어요. 쉬고 싶을 때가 많죠. 남들은 좋은 직업이라고 하지만 저희는 그 자리를 지키려고 어마어마한 운동을 하거든요. 또 개인 생활도 없으니까 빨리 끝내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아내가 마흔 두 살까지 하라고 하니 좀 더 노력해야죠. (웃음)”

 

 

“언제나 제 꿈은 행복한 가정이었어요. 효린이가 벌써 5살인데 야구 그만두면 학부형으로 돌아가야죠. 체육대회 있으면 함께 하고 싶고, 시간 많으면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요즘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제가 없을 때 재롱잔치나 행사를 하니까 좀 미안하더라고요. 은퇴 후에는 주말에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시간을 많이 쏟아야죠.”

 

 

끝사랑은 결국 ‘가족’이다. 그는 에이전트 대표인 친형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형님은 어렸을 때부터 모든 걸 저한테 맞춰줬어요. 저 때문에 정말 고생 많이 한만큼 제가 잘해야죠. 그래야 또 형님이 열심히 한 게 티가 나잖아요. 보답해야 돼요. 형님뿐만 아니라 한국 에이전트 직원들이 밤낮으로 잠도 못자고 고생했어요. 피곤하겠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이대호 야구를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제가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겠죠.”

 

 

마지막으로 올 시즌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이대호 경기를 눈 빠지게 기다릴 대한민국 야구팬들에게도 한마디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시애틀 매리너스 이대호입니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해서 웃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항상 응원해주세요. 파이팅!”

 

 

……

위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이대호와의 만남은 나를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과연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언가에 미친 적이 있을까. 온갖 핑계를 대며 도전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는가. 이 글을 읽은 당신도 부끄러운 자신의 민낯을 발견했다면 지금이라도 시작해보자. 도전의 크고 작음은 없다. 도전은 그자체로 황홀한 존재일 뿐이다. “가장 큰 실패는 도전하지 않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책상머리맡에 붙이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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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 묻습니다! 대호가 답합니다!]

 

프리미어12때 대기타석에서 후배들에게 조언해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뭐라고 이야기했나요?

(김)현수한테는 편하게 치라고 이야기했어요. 못 치면 형이 치면 되고 형 뒤에 (박)병호도 있고 셋 중에 한명은 안치겠나. 편하게 해라.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잖아요. “너 혼자 할 생각하지 말고 풀 스윙하고 온나.” 그랬는데 스윙 하나도 안하고 더 부담스럽게 볼넷으로 나가서 만루 만들더라고요. (웃음)

 

 

재팬시리즈에서 팀 우승 선봉장에 섰어요. 프로 와서 처음 느낀 우승의 맛은 어땠나요?

좋죠. 진짜 좋았는데 제가 생각했던 느낌은 아니었어요. 저는 눈물이 나서 완전 기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일본어를 구사할 줄 모르니까 그렇게까지는 안 되더라고요. 만약 롯데에 있었다면 정말 울고불고 후배들 부둥켜안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을 거 같은데 저는 덤덤했어요. 애들은 울더라고요. 첫해는 감독님 눈물 보니까 눈물날거 같았는데 두 번째는 그냥 우승했구나. 사실 마지막 타석에 데드볼 맞아서 아파죽는 줄 알았어요. 다들 헹가래하고 있을 때 저는 아이싱하고 있었어요. (웃음) 대표팀 생각만 했어요. 대표팀 가야하는데 아파서 못 갈까봐 그 생각 때문에 못 즐겼죠.

 

 

‘딸바보’로 유명한데 효린이 자랑 좀 해주세요!

아, 진짜 예뻐요. 요즘에 애교가 너무 많거든요. (웃음) 아빠를 너무 좋아해요. 항상 아빠 옆에 있으려고 하고 그런 게 더 고마운 것 같아요. 한 달 정도 나가있으니까 떨어지는 걸 알아요. 어디 가려면 나가지 말라고 하는데 너무 귀엽죠. 미국은 함께 가는데 미안한 게 그거에요. 말 좀 배울 때 일본에 있어서 말을 늦게 텄어요. 한국에 두 달 있으면서 적응했는데 이제 또 미국 가니까 언어에 대해 헷갈려 해서 미안하죠. 그래도 나중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곧 태어날 둘째가 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야구하겠다고 하면 시킬 건가요?

아휴. 절대. (너무 하고 싶다고 하면요?) 집 나가라고 할 거예요. 운동은 안 돼. 야구는 절대 안 돼요. 운동 중에서 그나마 골프는 시키겠는데 야구는 죽어도 안 시킬 거예요. 얼마나 노력해야 하고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안 시키고 싶어요.

 

 

 

만약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다면 KBO리그만 남아요. (웃음) 한국에 다시 와서 롯데에 우승을 안겨주는 건 어떤가요?

아직도 이런 질문하시는 걸 보면 롯데 팬들이 저를 잊지 않으셨다는 거겠죠? 팬들한테는 늘 감사드려요. 제가 미국을 떠나야 한다면 행선지는 당연히 소프트뱅크나 롯데예요. 부산남자라 그런지 몰라도 한번 정이 들면 거기에만 꽂히거든요. 다른 팀은 안 갈 거 같아요. 아직까지 한국 간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만약 돌아간다면 롯데 유니폼을 입고 싶다’는 소망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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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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