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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Dream 삼성 라이온즈 이케빈, 최충연 MEMORIES

dugout*** (dugout***)
2016.03.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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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저는 굉장히 공격적이며 누구보다도 속구가 빠릅니다.

B : 저도 제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죠. 저는 공격적인 투수입니다. 음, 따라 한 것이 너무 티 나나요? (웃음)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솔직한 이들은 바로 삼성 라이온즈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이케빈과 최충연이다. 이들은 프로선수가 된 지 1년도 안 돼 소속팀의 5선발 후보로 주목받았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느끼는 부담감과 경쟁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다섯 살이나 나는 나이 차이 또한 두 투수의 사이를 멀게 한다. 그러나 에디터가 만난 이케빈과 최충연은 닮아 있었고 가까웠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사람의 야구 이야기. 자, 이제 당신은 이 이야기를 읽도록 지명받았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Jiwon Yeo Location Guam Leopalace Res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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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꿈꿔왔지만 어려운 그 이름, 전지훈련.

 

 

안녕하세요! 올해가 프로 첫 시즌인 두 선수. 스프링캠프도 처음이에요. 어떠세요?

이케빈(이하 이): 괜찮아요. 사실 이렇게 단체로 훈련받으러 온 게 처음이 아니거든요. 미국 고등학교에서도 남미 쪽으로 한 달 동안 훈련을 갔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빡세게 하는 건 처음이에요. 힘들지만 아직까진 잘 버텨내고 있네요!

최충연(이하 최): 힘들어도 기분 좋아요. 저도 케빈이 형처럼 단체 훈련은 갔지만, 국내로 갔었거든요. 프로 선수가 되니까 이렇게 해외로 나와서 훈련도 받고…. 학생 때 열심히 했던 보상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어제는 선수단 전체 휴식일이었어요. 두 분 뭐하셨나요?

최: 종일 숙소에서 잤어요. 지난 휴식일 땐 밖에 나가서 쇼핑하고, 이곳저곳 둘러봤는데 이번엔 많이 피곤했나 봐요.

이: 저는 오랜만에 바람 쐬고 왔어요. 바다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까 힘이 불끈불끈 솟더라고요. 아, 그렇다고 훈련장 밥이 맛없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웃음)

최: 맞아요. 정말 맛있어요.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어요.

 

 

얘기 들으니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이곳 괌에서의 룸메이트는 누구인가요?

이: (장)필준이 형이요. 형이 영어를 워낙 잘해서 훈련 끝날 때랑 밥 먹을 때 인사하는 것 빼곤 한국어를 쓸 일이 거의 없어요.

최: 저는 (차)우찬 선배요.

 

 

룸메이트에 관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최: 재밌는 건 아니고, 제가 우찬 선배에게 감동받은 적이 있어요. 괌 전지훈련 첫 날에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이더라고요. 선배는 먼저 도착해서 자고 있었어요. 잠 깨울까봐 불 끄고 조용히 짐을 푸는데 갑자기 우찬 선배가 불을 켰어요. 그러더니 “충연아, 편하게 해. 괜찮아.” 라고 말했는데 그 때 정말 감사했어요. 눈에 하트가 뿅…. (심쿵) 또, 평소에 제 고민도 잘 들어주세요. 우찬 선배님은 사랑입니다. (웃음)

이: 충연이 말이 맞아요. 저희가 신인이라 아직 적응하는 게 어렵고 훈련이 진행되는 방법도 잘 모르는데 차우찬 선배가 잘 도와주셔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적응하는 게 어렵다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요?

이: 나머지는 다 괜찮은데 위계질서에 관해서는 아직 적응 중이에요. 미국이랑 많이 다르거든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감독님 그리고 코치님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직접 전할 수 있었죠. 반대로 한국에서는 위계질서가 엄격하더라고요. 감독님은 어려운 분이고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누군가를 통해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도 제가 한국과 KBO리그를 선택했으니까 적응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최: 저는 지금이 고등학교 다닐 때와 한참 다르단 것을 온몸으로 느껴요. 학생 때는 코치님이랑 감독님께서 부족한 점을 일일이 다 꼬집어 주셨는데 여기선 자율적으로 해야 하거든요. 그래도 그때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몸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기대가 큽니다.

 

 

선수가 직접 전해주는 괌 전지훈련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제 신인 선수를 파헤칠 때가 왔다. 먼저 알아볼 선수는 이케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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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Lee, Who is He?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1992년생, 우리 나이로 25살이니 신인치고 다소 연식(?)이 높다. 185cm, 89kg의 체격 조건은 훌륭하다. 미국에서 한 때 포수였던 경험을 떠올리면 어깨는 더 볼 것도 없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메이저리그를 향해 달렸다. 빅리그 무대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너무나 허무한 마음에 야구를 놓고 싶었던 이케빈. 그러나 놓는다고 쉽게 놓일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고양 원더스를 통해 야구와 다시 만나려 했지만, 팀은 해체됐다.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서 성공하고자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게 살다가 연천 미라클 야구단을 만났다. 그렇게 기적을 바라보는 이들과 함께 야구하다 경성대학교 야구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지난 2015년. 마침내 꿈꾸던 프로 선수가 됐다.’

 

 

여기까지가 야구팬들이 알고 있는 이케빈에 대한 정보다. 자, 이제부터 <더그아웃 매거진>이 독자들을 위해 그에 대한 심층 정보를 알려주겠다!

 

 

한국말이 작년 8월 지명회의 때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비법이 무엇인가요?

한국어책 몇 권 샀어요. 국어를 공부해야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잖아요.

 

 

덕분에 이렇게 인터뷰할 수 있나 봐요. (웃음) 삼성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한국말이 어색한 상태에서 대구 사투리를 접하는 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삼성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투리는 제게 어려운 존재였어요. 프로 지명받기 바로 전까지 생활했던 경성대학교가 부산에 있거든요. 경성대 구용길 코치님이 억양도 세고 사투리가 심했어요. 저한테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사투리 때문에 이해를 못 하겠는 거예요. 대답은 해야겠고….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질문인데도 ‘네.’ 하고 대답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고 더 귀를 기울이다 보니 한국어가 빨리 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어 하니까 이케빈 선수 한국 이름이 생각나네요. 이헌주 맞죠? 유니폼에는 이름을 어떻게 새겨 넣을 거예요?

네. 맞아요. 제 한국 이름은 이헌주입니다! 독자 여러분 모르셨죠? (웃음) 미국에서 서류 작성할 일 있으면 케빈 헌주 리라고 썼어요. 제 첫 라이온즈 유니폼에는 케빈을 넣을 거예요. 따로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더 독특할 것 같아서라고 할까요? (웃음)

 

 

네. 케빈이라는 이름이 이국적이어서 눈에 띌 것 같아요.

게다가 한국에서는 ‘케빈’이라는 이름이 사랑받더라고요. 많은 분이 크리스마스에 즐겨보는 영화 ‘나 홀로 집에’의 주인공도 케빈이고 한국에서 유명한 청바지 상표도 케빈 클라인(?)이잖아요. 저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웃음)

 

 

에디터와 이케빈은 초면이었다. 첫 만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10년은 알고 지낸 단짝 친구를 대하는 듯이 에디터에게 장난도 치고 솔직한 입담을 털어놨다. 사실 에디터는 지쳐있었다. 취재 하나만을 위해 한국에서 괌까지 이동했고 취재가 연이틀 계속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케빈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한 번 터진 웃음보는 멈출 줄 몰랐다. 금세 이케빈이라는 사람의 야구 인생이 궁금해졌다.

 

 

자, 저희 잡지 공식 질문이죠! 야구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운동을 취미로 삼기도 하고요. 봄에는 야구, 여름엔 축구, 가을에는 농구를 했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길을 정하지 못해 야구와 미식축구를 번갈아가면서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야구에만 집중하기 시작한 거죠.

 

 

고등학교에서는 포수 준비를 했다고 들었어요.

네. 보시다시피 제가 어깨가 좋고 공도 잘 받았거든요. (웃음)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즌 마치고 연습하다가 다른 친구에게 송구하던 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본 거에요. 그분이 감독님께 잘 말씀해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됐네요. 주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1년에 3이닝에서 5이닝 정도 마운드에 섰는데 신기하게 그 순간에 딱 걸린 거죠!

 

 

미국은 야구 잘하는 선수한테 포수를 시키는 전통(?)이 있잖아요. 하지만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했어요. 많이 아쉬웠죠?

네. 야구부가 있는 학교에 가려고 비싼 등록금도 내고 노력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아쉬웠죠. 그래도 야구라는 끈을 놓을 수 없었어요. 제가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 야구단이었던 고양 원더스를 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어요. 독립 야구단이라도 선수들을 KBO리그에 많이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행을 택했는데 제가 입국하기 전에 팀이 해체됐어요. 메이저리그 진출 실패했을 때보다 그때가 몇 배는 더 서럽고 아쉬웠어요.

 

 

그래도 하늘은 이케빈 선수의 편이었나 봐요. 2015년에 연천 미라클 야구단이 창단했어요! 미라클 팀에서 생활하는 것은 어땠나요?

다 좋았어요. 선수들도 열심히 하고 감독님도 좋은 분이셨고요. 하지만 휴식일이 3~4일로 조금 길었던 게 아쉬웠어요. 지리적 위치도 좋지 않았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산만 넘으면 북한이라는 사실이 항상 절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동네에 농장과 탱크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간식 사 먹으려면 운전해서 시내로 나가야 했던 것도 아쉬웠습니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기적’을 위해 달리는 연천 미라클 선수단. 정말 대단합니다. 프로 지명 받은 선배로서 덕담 부탁할게요.

희망 잃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저는 매일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서 하나하나 이루어 나갔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어요. 큰 목표가 아니라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걸 꼭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천 미라클, 그 팀에 속한 이유를 절대 잊지 마세요. 아자 아자 화이팅!

 

 

그렇게 이케빈 선수는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에 집중하고 싶어 경성대로 옮겼어요. 윤영환 감독님께서 잘 맞아주셨나요?

네. 아주 잘 맞아주셨어요. 처음엔 제가 경성대 학생이 아니라서 눈치 보일까 봐 걱정했었거든요. 웬걸! 그런 걱정 할 이유가 없었어요. (웃음) 삼촌을 통해서 감독님 소개를 받았는데 저랑 통화하자마자 “이번 주부터 함께 하자”고 먼저 말씀해주셨어요. 생활할 때는 숙소, 밥이 다 무료로 제공됐고요. 운동 역시 제가 기대했던 만큼 체계적이었습니다. 또, 윤 감독님께서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스카우트가 일주일에 여섯 번씩 왔었는데 그것도 좋은 자극제였죠. 힘이 되는 말씀도 많이 해주셨고요. 감독님은 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이케빈의 이야기다. 어떤가? 그는 스스로 표현한대로 우여곡절 많은 선수였다. 그의 고생담을 듣다 보면 안타까움이 앞섰다. 그러다가 그의 긍정적인 성격이 느껴질 때면 엄마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이케빈과는 다른 매력을 느끼러 갈 차례다. 최충연의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야구 좀 아는’ 독자들이라면 최충연의 화려했던 고교 시절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그에게도 성장통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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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연, 그는 누구인가

 

 

최충연 선수. 늦었지만 ‘조아제약 아마 MVP’ 축하합니다. 지난해 모든 아마추어 선수 중 가장 잘했다는 말이잖아요. 뿌듯하시겠어요.

네. 아무나 주는 상이 아니잖아요. 상을 받았는데 자부심이 생기면서도 ‘이걸 내가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저보다 잘하는 친구들도 많았거든요. 여러 생각을 한 뒤에 제가 내린 결론은 ‘큰 상 받은 만큼 열심히 하자’였어요. 초심 잃지 말고 주어진 길을 꿋꿋이 걷는 게 제 몫이겠죠? (웃음)

 

 

그럼요. 열심히 하면 그게 최고의 보답이죠!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야구대회 당시 옷과 밥이 모두 다 무료여서 아주 좋다’고 말했었죠?

네. 질 좋은 제품들이 다 무료여서 좋았습니다. 솔직히 고등학생 때는 모든 제품을 다 부모님 돈으로 샀는데 대회에선 무료로 제공되니 신기했죠. 신세계였어요! 첫 소집일에 스파이크랑 옷을 다 주더라고요. 받고 나니 더 의욕이 생기고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회 당시에는 투수로 출장했지만, 초등학교 때는 투수가 아니었어요. 어느 포지션을 맡았나요?

처음에는 외야수였어요. 그러다 점점 내야로 들어오고 6학년 땐 감독님께서 투수를 시키시더라고요. 눈에 띄진 않았지만, 제구력은 있었거든요. 중학생 때는 다시 내야수를 하다가 2학년 때 투수 연습을 시작했는데 허리를 다쳤어요. 그렇게 어영부영 여러 포지션에서 떠돌다가 3학년 때 포수 한 명이 야구를 그만뒀어요. 당시 중요한 대회가 바로 코앞이었는데 감독님께서 저한테 “이 대회에서만 포수 맡아주면 앞으로 네가 하고 싶어 하는 포지션 계속 시켜준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쉽게도 상황이 좋지 않아서 투수하고 싶은 제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시무룩) 그래도 경북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쭉 투수했어요.

 

 

그렇게 ‘투수 최충연’이 된 것이군요. 정말 다사다난했네요.

네, 그렇죠. 그래도 마지막엔 제가 하고 싶었던 포지션을 맡게 돼서 다행입니다.

 

 

하고 싶은 걸 하게 돼서 그런 걸까요? 고교 시절 최충연은 말 그대로 리그를 ‘씹어 먹는’ 투수였어요. 뭐가 그렇게 잘 풀렸던 것 같나요?

딱히 잘 풀린 것은 없고 같은 학교였던 (박)세진(kt 위즈)이랑 라이벌이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처음에는 세진이랑 제가 라이벌로 불린다는 자체가 창피할 정도로 실력이 많이 부족했어요. 그때 세진이는 선발투수로 꼬박꼬박 시합에 나가고 좋은 대우도 받던 상황이니까…. 솔직히 많이 부러웠죠. 그러다 2학년 때 제 구속이 빨라지기 시작했어요. 상황이 변하니 라이벌이라는 말에 자극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세진이가 대회에서 잘 던지면? 저도 다음 대회에서는 무조건 잘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죠. 아마 세진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와 경쟁하면서 발전했습니다. 조금 치열하긴 했지만(?), 서로 잘 됐으니 선의의 경쟁 아닐까요? (웃음)

 

 

최충연 선수가 지명 받은 날이 작년 6월 29일이었잖아요! 기억나세요?

당연하죠. 저는 대구 토박이라 그런지 어릴 때부터 삼성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정말 간절했죠. 그 날은 저 대신 코치님이 가셨는데 연락이 안 오는 거예요. 코치님께 웨이트실에서 운동하고 있겠다고 했는데 떨려서 운동도 못 하겠고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스포츠 기자님이 오더니 저한테 축하한다고 하셨어요. 그게 제 지명에 대해 처음으로 들은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좋았죠. 미친 듯이 좋았는데, 세진이도 삼성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좋은 티를 내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그 친구는 저한테 축하한다고 했고 저는 kt 특별지명이 1주일 남았으니 기다려보자고 했죠. 다행히 세진이도 잘 됐고요.

 

 

그 날 계약금을 2억 8천만 원이나 받았어요. 그 돈은 다 어디에 썼나요?

전액 다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돈으로 어려운 거 다 정리 하시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까지 저를 믿고 키워주신 아버지께 이렇게나마 보답하는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삼성의 선수라면 다들 본보기를 이승엽 선수로 꼽아요. 아까 훈련장에서 이승엽 선수를 잠깐 만났었는데 최충연 선수를 ‘무조건’ 인터뷰하라고 했어요. 안 하면 저를 때릴 것 같은 살기를 내뿜으면서…. (웃음)

평소에도 정말 잘 챙겨주세요. 고등학생 때 시민야구장에서 경기를 했던 적이 있어요. 그 당시 이승엽 선배님께서 더그아웃에 들어오셔서 무조건 이기라고 격려해주셨어요. 이런저런 용품들도 잘 챙겨주셨고요. 이렇게 한 팀에서 뛸 수 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2016년 삼성의 투수 유망주로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는 ‘투수’ 최충연. 그의 시작은 마운드 아래였다. 중학생 때까지는 건강 등의 문제로 인해 뚜렷한 자리에 정착하지 못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비로소 투수를 맡게 됐다. 그러나 남들보다 투수 연습이 부족했던 터라 처음에는 쓴맛을 봤다. 자신보다 잘하는 다른 친구를 보며 혼자 속앓이를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족한 만큼 더 열심히 노력했고 그의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2학년이 되니 구속이 오르기 시작했고 그는 선의의 라이벌 박세진과 경쟁해서 함께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꿈에 바라던 팀, 삼성에서도 1차 지명을 받고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의 캐나다전 7.2이닝 1실점으로 역투하며 주목받는다. ‘투수’라는 포지션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이 그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제 더 큰 꿈을 이룰 차례다. 프로선수 최충연이 어떨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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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수의 이야기를 아주 깊은 곳까지, 심각하게 파헤쳤다. 심각한 이야기도 좋지만, 실제 이케빈과 최충연의 성격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잠깐! 두 선수가 말한 부분을 거의 손대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두 선수를 만나러 오기 전에 김태한 투수코치님을 잠깐 만나고 왔어요. 코치님께서 하는 말이 두 선수 모두 흡수가 빠르다고 하시더라고요. 하나를 가르쳐주면 바로 이해한다고…. 동의하세요?

이: 당연하죠~ 투수 처음 시작할 때는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아서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도 투수 시작한지 5년 정도 되니 한 번에 많이 고치는 것보다 조금씩 살짝 고치는 게 좋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 배운 게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요.

최: 저는 그렇게 흡수가 빠르지 못한 것 같은데…. 김태한 코치님, 양일환 코치님, 성준 코치님 이렇게 세 분이 도와주시는데도 힘들어요. 한 번에 다 소화해 내려고 하니까 힘든가 봐요. 케빈이 형 방법 좀 배워야겠어요. 형,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요?

이 : 노력이 답이야. (웃음)

 

 

1초 만에 답 해주셔야 합니다. 선발, 불펜! 둘 중에 맡고 싶은 보직은요?

(이구동성) 선발!

이: 야, 가위바위보 하자. 이긴 사람이 선발투수 해. (웃음)

 

 

팬들에게 불리고 싶은 별명이 있을까요?

최: 충타니요. 요즘 오타니 선수가 대세잖아요. 저도 그렇게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이: ‘충타니’보다 ‘케타니’가 더 입에 잘 익지 않나요? (웃음)

 

 

서로에게 이것만큼은 내가 더 낫다! 하는 것이 있다면요?

이: 얼굴이요. 솔직히 인물은 제가 낫죠. 경험도 제가 더 많고요. 충연이는 대한민국에서 계속 1위만 했으니 실패를 모르잖아요.

최: 신체 조건은 제가 더 낫지 않나 싶어요. 제 키가 189cm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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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첫 시즌의 개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요?

최: 개인 목표는 1군에서 10승하고 신인왕 받는 것이요. 간절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하고요. 팀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죠!

이: 저 역시도 팀 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우승이요. 개인 목표는 1군 무대에서 부상당하지 않고 팀의 승리에 이바지할 수 있는 좋은 투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잘 하지 않는 질문인데 갑자기 하고 싶네요! 서로의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

최: 하….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 이렇게

: 케케하게(?) 생긴

: 빈이형 (웃음)

 

 

이: 야, 케케하게 생겼다니!

: 최고의 후배

: 충연이

: 연봉 많이 받아라

 

 

마지막으로 삼성 라이온즈 팬들에게 한 마디!

이: Hello? 이케빈입니다. 저에 대한 뜨거운 관심 감사합니다. 많은 사랑 주신만큼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화이팅!

최: 안녕하십니까. 삼성 라이온즈 최충연입니다. 팬 여러분들께서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만큼 좋은 결과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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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수 있는 사람’. 서로에게 서로가 어떤 존재냐고 물은 에디터의 질문에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장난스럽고 귀여운 형과 어른스럽고 우직한 동생. 반대로 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었다. 이 모습 그대로 유지해가며 삼성의 미래를 밝게 비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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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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